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지나쳤습니다. "신부님... 하고 싶은 게 죄가 되나요?" 라는 문구를 보며 '이걸 영화로 만든다고?'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나니 부끄러웠던 건 영화가 아니라 제 시선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세션(The Sessions)>은 소아마비로 온몸이 마비된 38세 시인 마크 오브라이언의 실화를 바탕으로, 섹스 테라피스트와의 여섯 번의 세션을 통해 한 사람이 사랑받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장애인의 성(性), 왜 우리는 이걸 불편해할까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솔직히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장애인의 성(sexuality)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라는 사실 자체가 왠지 낯설었거든요. 그런데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생각해봤더니, 결국 저 스스로가 장애인을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크 오브라이언은 철폐(iron lung), 즉 호흡 보조 장치 없이는 세 시간도 버티기 어려운 남자입니다. 철폐는 폐 기능이 극도로 저하된 환자가 외부 압력 변화를 이용해 호흡을 유지하도록 돕는 장치로, 마크는 이 안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굴 근육과 목 정도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죠.
그런 마크가 성경험을 원했다는 사실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그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욕망은 몸의 상태와 상관없이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출처: WHO 성건강 정의에 따르면, 성건강(sexual health)이란 단순한 신체 기능이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차원을 포함한 전인적 웰빙의 일부입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그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저도 장애인을 대할 때 말 한 마디, 시선 하나로 상처를 줄까 봐 괜히 긴장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름'을 다른 부류로 분리해내는 제 안의 편견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 마크 오브라이언은 철폐(iron lung) 의존 상태로 움직임 범위가 약 90도에 불과했습니다
- WHO는 성건강을 신체적·정서적·사회적 웰빙이 통합된 개념으로 정의합니다
- 영화는 장애인의 성을 금기나 자극으로 다루지 않고, 자연스러운 인간 욕구로 담담하게 그립니다
섹스 테라피, 치료인가 감정인가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관계는 마크와 섹스 테라피스트 셰릴 사이였습니다. 섹스 테라피(sex therapy)란 성 기능 장애나 심리적 성적 억압을 가진 당사자가 전문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성적 자아를 회복하는 상담 및 신체적 지원 과정을 말합니다. 셰릴은 남편과 아이도 있는 여성으로, 철저히 직업적 경계를 유지하면서 마크를 만납니다.
처음엔 치료 그 자체였습니다. 첫 세션에서 마크가 긴장한 나머지 돈을 먼저 내밀자 셰릴이 "저는 매춘부가 아니에요"라고 바로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짧은 대화 하나로 이 관계가 어떤 성격인지 명확하게 설정됩니다.
그런데 세션이 거듭될수록 셰릴의 표정이 달라지는 게 보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경계를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셰릴은 마크가 시를 편지로 보내오자 남편이 버린 편지를 밤에 몰래 쓰레기통에서 꺼냅니다. 그 장면 하나가 셰릴의 내면을 모두 설명해줬습니다.
이 영화가 억지 멜로가 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전이(transference)라는 심리 개념이 있는데, 이는 내담자나 환자가 치료자에게 감정을 투사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 감정이 쌍방향으로 번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선을 넘어 막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 절제가 오히려 더 먹먹하게 느껴졌습니다.
출처: 미국결혼가족치료협회(AAMFT)에 따르면 전문 섹스 테라피는 엄격한 윤리 기준과 경계 설정을 전제로 진행되며,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감정적 연결은 치료 과정의 부산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실화가 주는 무게, 그리고 이 영화가 남긴 것
영화 <세션>이 다른 장애인 소재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마크를 절대로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마크는 영화 내내 위트가 넘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때론 삐뚤어지기도 하는 그냥 매력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장애가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전부가 아니었어요.
한국 영화 <오아시스>도 장애인 주인공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 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한공주를 한 명의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반면 <세션>의 마크에게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신부님, 셰릴, 도우미 베라가 있었습니다.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지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정전으로 철폐가 멈추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은 순간입니다. 마크의 삶이 얼마나 얇은 균형 위에 올려져 있었는지, 그 순간 제가 숨을 참고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마크는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난 뒤 슬픔보다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곁에서 지켜본 느낌이 남았습니다. 마크는 사랑도 해봤고, 설레기도 했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진심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실화 기반 영화(biographical film)란 실존 인물의 삶을 각색한 작품으로, 허구의 극적 장치 없이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마크 오브라이언은 실제로 시인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고, 그의 성치료 경험을 직접 기록한 에세이가 이 영화의 원작이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조금 더 다르게 다가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세션은 실화인가요?
A. 맞습니다. 실제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크 오브라이언의 삶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마크가 직접 쓴 에세이 「On Seeing a Sex Surrogate」가 원작이며, 그는 2010년 4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화라는 걸 알고 보면 영화가 훨씬 다르게 느껴지시지 않을까요?
Q. 섹스 테라피스트와 성매매는 다른 건가요?
A. 전혀 다릅니다. 섹스 테라피스트는 심리적·신체적 성 기능 장애를 치료하는 전문 직종으로, 엄격한 윤리 기준과 치료 프로토콜을 준수합니다. 영화에서도 셰릴이 이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이 직업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Q. 수위가 높은 편인가요?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A. 저도 처음엔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노출 장면이 있지만 선정적이라기보다는 담담하고 솔직한 톤으로 표현됩니다. 오히려 성을 이렇게 부드럽고 진지하게 다룬 영화가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영화가 전반적으로 우울하지 않나요?
A.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전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마크가 워낙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 중간중간 실소가 터지는 장면이 꽤 있습니다. 슬픔보다는 따뜻하고 솔직한 감정이 훨씬 더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결론
영화 <세션>을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마크의 장애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크의 삶이 그렇게 충만할 수 있었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포스터 문구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소재를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조용히 증명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장애인의 성'이 소재인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 보고 나서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영화'라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보고 나서 멍하니 앉아 있게 되는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한 번쯤 꺼내 보실 만합니다.